|
▲ 비만치료 '마운자로'시대 (사진: AI생성) |
비만치료제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위고비에 이어 마운자로까지 등장하면서 과거 식이요법과 운동만으로 체중을 관리하던 비만치료의 패러다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한국에서 마운자로를 비만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사실상 약값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같은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가 중국에서는 국가 약가협상을 거쳐 월 6만~7만원대까지 내려갔고 일본에서는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 비만환자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도 비만치료제 접근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다만 국가별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중국의 저가 티르제파타이드 가격은 주로 2형 당뇨병 치료에 대한 국가 의료보험 협상가격이고, 일본 역시 당뇨병 치료제인 마운자로와 비만치료제로 허가된 젭바운드의 보험체계가 다르다.
그럼에도 세 나라의 차이는 분명하다.
중국과 일본은 국가가 일정 부분 가격과 치료대상을 관리하는 반면 한국의 비만치료는 사실상 시장가격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중국 2.5mg 4회분 324위안…가격 80% 이상 떨어져
중국에서는 2026년 1월부터 티르제파타이드의 2형 당뇨병 치료 적응증이 국가 의료보험 목록에 포함됐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2.5mg을 주 1회씩 4주 사용하는 비용은 324.1위안까지 내려갔다. 한화로 대략 6만~7만원대다. 5mg 4회는 551위안, 7.5mg은 751.6위안, 10mg은 936.7위안 수준이다.
출시 초기와 비교하면 2.5mg 기준 가격이 80% 이상 낮아졌다. 중국 정부의 대규모 약가협상과 시장 경쟁이 가격을 끌어내린 것이다.
최근 중국 현지에서 비만치료제를 주문한 사례에서도 처방·약값·배송비를 포함해 459위안 정도였으며, 일부 약국에서는 티르제파타이드 2.5mg 주 1회 4주분을 324.1위안에 판매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중국에서는 비만치료를 월 6만원에 보험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국가 의료보험 적용 대상은 기본적으로 2형 당뇨병 치료다. 비만 적응증도 중국에서 허가돼 있지만 보험 적용 범위와 가격체계는 구별해서 봐야 한다.
그럼에도 중국 사례가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대규모 국가 약가협상이 이루어지면 고가의 혁신신약 가격도 상당폭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누구나’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비만’에 보험
일본은 또 다른 모델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2026년 8월부터 당뇨병 치료용 마운자로 2.5mg의 공정 약가는 1회 1443엔이다. 4회 투여하면 5772엔이다.
비만 치료용 티르제파타이드는 '젭바운드'라는 이름으로 별도 관리된다. 2.5mg 공정 약가는 1회 3067엔으로, 4주 기준 1만2268엔이다.
중요한 것은 가격보다 보험 적용 기준이다.
일본은 비만이라고 해서 누구에게나 비만치료제의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다.
식사·운동요법을 시행했음에도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한 환자 가운데 ▲BMI 35 이상이거나 ▲BMI 27 이상이면서 2개 이상의 비만 관련 건강장애를 가진 경우 등을 대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당뇨·내당능 장애 등 동반질환과 의료기관 요건까지 관리한다.
즉 일본의 정책은 '다이어트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위험이 높은 비만을 질병으로 치료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 차이는 한국이 향후 비만치료제 급여화를 논의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한국은 2.5mg도 30만원…증량하면 월 70만원대
한국릴리는 마운자로를 비급여 의약품으로 안내하고 있다.
가격을 정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과 약국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 자율가격 구조다. 한 상자는 일회용 펜 4개로 구성돼 주 1회 투여하면 4주분이다.
2026년 8월 국내 민간 가격정보 플랫폼에 등록된 병·의원 가격을 보면 2.5mg 4주분은 최저 약 29만1000원, 중앙값은 33만원 수준이다.
5mg은 중앙값 약 42만5000원, 7.5mg과 10mg은 약 58만원, 12.5mg과 15mg은 70만원대까지 올라간다. 의료기관과 약국, 지역에 따라 가격 차이도 상당하다.
12.5mg과 15mg이 최근 국내 시장에 본격 공급되면서 일부 약국에서는 물량이 들어오자마자 소진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약사들 사이에서도 높은 공급가격 때문에 소비자 판매가격을 어떻게 정할지가 고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수요가 없어서 비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요가 강한데 비급여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어 환자의 지불능력이 치료 접근성을 결정하는 구조에 가깝다.
비만은 이미 ‘미용’으로만 볼 수 없는 질환
비만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논의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반론이 있다.
"살을 빼는 데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의학에서 비만은 단순한 외모 문제가 아니다.
대한비만학회의 2025 비만 팩트시트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성인의 비만 유병률은 38.4%였다. 남성은 49.8%로 사실상 두 명 중 한 명에 달했다.
2014년 31.1%였던 전체 비만율은 2023년 38.4%까지 높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합병증이다.
비만군의 고혈압·당뇨병·고콜레스테롤혈증·대사증후군·고요산혈증 등 만성질환 유병률은 비비만군보다 1.5~3.6배 높았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은 4.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비만을 방치해 당뇨병·고혈압·심혈관질환으로 진행된 뒤 건강보험을 사용하는 것과, 고위험 단계에서 체중을 관리해 질환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사회 전체 의료비 측면에서 효율적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체중 20% 감소…이제 ‘효과가 있느냐’의 문제는 달라졌다
새로운 비만치료제의 등장은 이런 논의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2539명의 비만 또는 과체중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SURMOUNT-1 임상시험에서 티르제파타이드 15mg 투여군의 72주 평균 체중 감소율은 20.9%였다. 10mg군은 19.5%, 5mg군은 15%였다.
15mg 투여자의 56.7%는 체중이 20% 이상 줄었다.
비만과 중등도·중증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함께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티르제파타이드는 체중뿐 아니라 수면 중 무호흡·저호흡 지수, 혈압 등 여러 지표를 개선했다.
마운자로는 현재 한국에서도 BMI 30 이상 비만 성인이나, BMI 27 이상이면서 고혈압·이상지질혈증·제2형 당뇨병·수면무호흡증·심혈관질환 등 체중 관련 동반질환이 있는 성인의 만성 체중 관리 목적으로 허가돼 있다.
따라서 비만치료제는 더 이상 단순히 '몇㎏을 빼주는 다이어트 주사'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보험을 적용할 수는 없다
효과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는 결론도 위험하다.
우리나라 성인 비만율이 38%를 넘는 상황에서 대상자를 광범위하게 설정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 부담은 매우 커질 수 있다.
미용 목적의 체중 감량이나 정상체중에 가까운 사람들의 오남용 가능성도 있다.
약물 자체의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임상시험에서는 메스꺼움·설사·구토 등 위장관계 이상반응이 상대적으로 흔했고, 치료를 중단하면 체중이 다시 증가할 가능성도 확인됐다.
SURMOUNT-4 연구에서는 티르제파타이드 치료를 중단하고 위약으로 전환한 환자들이 이후 1년 동안 상당한 체중 재증가를 경험했다. 반대로 치료를 지속한 환자는 감소한 체중을 더 잘 유지했다.
비만은 단기간 주사를 맞고 끝나는 질환이 아니라 장기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정책도 '약값 지원' 하나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국도 ‘선별 급여’부터 검토할 수 있다
현실적인 대안은 전면적인 건강보험 적용보다 고위험군부터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면 첫 번째 대상은 BMI 35 이상의 고도비만 환자로 한정할 수 있다.
두 번째로 BMI 27~30 이상이면서 당뇨 전단계·당뇨병·고혈압·이상지질혈증·지방간·수면무호흡증 등 일정 수 이상의 합병증이 있는 환자를 포함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여기에 조건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식이·운동치료를 일정 기간 시행했는지 확인하고, 약물치료 시작 후 3개월 또는 6개월마다 체중·허리둘레·혈당·혈압 등 치료효과를 평가해 일정 수준 이상의 효과가 있는 환자에게만 급여를 연장하는 성과연동형 급여다.
효과가 없는 치료에 건강보험 재정을 계속 투입하는 것을 막으면서 필요한 환자의 접근성은 높일 수 있다.
정부가 제약사와 예상 사용량을 기준으로 약가를 협상하는 사용량-약가 연동제 또는 위험분담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중국 사례가 보여준 것도 결국 국가의 구매력과 가격 협상력이다.
특허 만료 기다리면 싸진다?…마운자로는 아직 멀었다
또 하나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다.
마운자로의 복제약이 곧 등장해 가격이 급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릴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마운자로·젭바운드의 성분인 티르제파타이드 핵심 물질 특허는 미국 2036년, 유럽 주요국 2037년, 일본에서는 2040년까지 보호될 예정이다.
따라서 마운자로 자체의 특허가 곧 끝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비만치료제 시장의 가격 경쟁은 특허 만료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의 특허 만료와 현지 제약사의 GLP-1 계열 신약 개발이 이어지고 있고, 경구 비만치료제를 비롯한 후속 제품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티르제파타이드 가격이 크게 내려간 것도 티르제파타이드 특허가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 약가협상과 시장 경쟁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약값 인하를 복제약 등장만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비만치료를 ‘소비’가 아닌 ‘예방투자’로 볼 때
한국 사회가 앞으로 답해야 할 질문은 비만치료제를 보험에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보다 더 근본적이다.
비만이 질병이라면 어느 단계부터 사회가 치료에 개입해야 하는가.
현재처럼 고위험 비만 환자조차 매달 수십만원의 비용을 온전히 부담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등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은 환자부터 치료 접근성을 높일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급여 확대는 답이 아니다.
그러나 필요한 환자에게조차 '비급여이니 알아서 치료하라'는 방식 역시 장기적으로 최선인지 검토할 시점이 됐다.
고도비만·합병증 환자 선별 → 일정 기간 생활습관 치료 → 약물치료 → 치료성과 평가 → 효과가 확인된 환자에 급여 지속이라는 관리체계를 만든다면 재정 부담과 오남용을 동시에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중국은 국가 약가협상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다. 일본은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고위험 비만환자를 선별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단순히 '비만약이 너무 비싸다'는 논쟁을 넘어 어떤 환자에게, 어떤 가격으로, 어떤 조건에서 사회가 치료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를 논의할 단계다.
비만치료제의 진짜 가치는 체중계의 숫자만 줄이는 데 있지 않다.
비만이 당뇨와 고혈압, 수면무호흡증 등 더 큰 질병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앞에서 끊을 수 있다면, 비만 치료비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미래 의료비를 줄이기 위한 예방적 투자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실제 비용절감 효과는 대상환자, 약가, 치료기간과 중단 후 체중변화 등을 포함한 국내 비용효과성 분석을 통해 검증돼야 한다.
자료: 한국릴리, 일본 후생노동성, 일본 PMDA, 중국 국가의료보장국 관련 자료, 대한비만학회, NEJM, JAMA, Reute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