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를 계기로 무디스, 피치, 스탠더드앤푸어스(S&P) 등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총괄과 연쇄 면담했다. 재경부는 이 자리에서 신평사들이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중미경제통합은행(CABEI)과는 한국 내 AI 협력거점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 3대 신평사 면담
이 부총리는 반도체 수출 호황과 설비투자 증가에 힘입어 올해 3%대 성장이 예상되고 중장기 성장 추세도 강화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IMF도 이달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3.3%로 올려 잡았다. 지난 7월 전망(2.6%)보다 0.7%포인트 높다. 이 부총리는 3대 메가프로젝트·7대 Seed 육성, K-GX 등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초로서 주거·일자리·서민금융 등 3대 사회정책을 통해 양극화를 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 일자리가 중요하다며 ‘K-뉴딜 아카데미' 등 정책을 소개했다.
신평사들은 정부의 재정정책과 미래대응기금 등 추가세수 활용 방안에 관심을 보였다. 이 부총리는 미래대응기금 편성으로 대규모 여유 재원을 쌓아 향후 경제 여건 변화에 대응하고, 올해 초과세수를 국고채 발행 물량 축소에 활용하는 등 국채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설명했다. 재경부는 올해 국세수입을 478조 6,000억 원으로 재추계했다. 3월 추경 때 추계보다 63조 2,000억 원 많은 규모이며, 재경부는 그 원인으로 반도체 호황과 증시 활성화 등을 꼽았다. 신평사들은 반도체·AI 호황이 고령화와 중동전쟁 등 대내외 불확실성에 따른 성장 둔화 우려를 상쇄하고 있다고 진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 다자개발은행과 AI 협력거점
이 부총리는 오딜 르노-바소 EBRD 총재, 히셀라 산체스 CABEI 총재와 각각 면담하고 한국 내 AI 협력거점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한국의 기술력과 다자개발은행의 개발협력 역량을 결합해 개도국의 AI 전환을 지원하고, 글로벌 AI 허브를 구체화한다는 구상이다. EBRD와는 지난 5월 AI 협력 사무소를 한국에 두기로 협력의향서(LOI)를 맺은 바 있다.
EBRD 르노-바소 총재는 한국이 AI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고, 한국의 소형모듈원전 기술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협력 확대를 희망했다. 이 부총리는 AI 허브가 EBRD의 AI 관련 사업을 발굴·연계하는 핵심 거점이 되도록 신속한 후속 조치를 당부했다. CABEI와는 한-CABEI AI·디지털전환센터 설치를 위한 MOU와 CABEI 한국사무소 설립협정을 함께 체결했다. 이 협정은 이미 운영 중인 한국사무소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으로, 산체스 총재는 한국 기업의 중미 진출 확대에 기대를 나타냈다. 이 부총리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포함한 3개 다자개발은행에 우수한 한국 인력의 진출 확대 필요성도 강조했고, 각 기관장이 공감했다.
◆ 유로클리어와 주요국 면담
발레리 위흐뱅 유로클리어 그룹 CEO와의 면담에서 이 부총리는 2024년 6월 유로클리어가 한국예탁결제원에 국채통합계좌를 개설해 한국의 세계국채지수 편입을 지원한 데 사의를 표했다. 유로클리어는 한국을 자본시장 개방과 선진화의 모범 사례로 평가했고, 양측은 국고채의 담보 활용 확대와 원화 거래 활성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주요국과의 양자 면담도 이어졌다. 이 부총리는 한미 재무·통화당국 2+2 면담 직후 프란시스 브룩 미국 재무부 부장관과 만나 양국 간 경제·금융 협력을 논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재무장관에게는 전략산업과 해외 공급망 기업 투자를 위한 '전략형 국부펀드' 신설 계획을 소개하고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경험과 노하우 공유를 요청했다. 올해 G20 초청국인 폴란드 재무장관과는 방산 협력 확대를 제안했다. 한-EFTA 자유무역협정 20주년을 맞은 스위스의 기 파믈랭 대통령과는 AI와 R&D, 바이오 등 첨단 분야 협력을 논의했다. 이번 순방의 성과는 AI 협력거점 MOU가 실제 개도국 AI 사업 발굴로 이어지는지, 초과세수 활용 방안이 국고채 발행 축소 규모로 구체화되는지로 가려질 전망이다.
협력거점의 성패는 서명식이 아니라 첫 개도국 AI 사업이 언제, 어떤 규모로 나오느냐에서 갈린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번 면담에 깔린 전제다. 재경부는 올해 초과세수 63조 2,000억 원의 원인으로 반도체 호황을 꼽았고, 신평사도 반도체·AI 호황이 성장 둔화 우려를 상쇄한다고 진단했다.
성장도 세수도 신용평가도 같은 업황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다. 청주·천안·아산에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기지가 몰려 있는 충청권은 이 사이클을 그대로 탄다. 호황기에 쌓는 미래대응기금과 전략형 국부펀드가 업황 둔화기의 완충과 지역 산업 다변화, 앞서 다룬 충남 양자 포럼 같은 미래 산업 육성으로 이어지는지가 진짜 시험대다.
기사작성: 미디어코리아 박상찬 기자 mknews114@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