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지급금 제도 운영의 주요 구조(자료=고용노동부)  ©

 

생계가 어려워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지급금 제도가 일부 사업장에서 조직적인 사기 수단으로 악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4억 2,300만 원 상당의 대지급금을 부정수급한 6개 사업장 58명을 적발했다고 19일 밝혔다.

 

대지급금은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라 임금 등을 체불당해 생계가 어려워진 노동자에게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일정 범위의 체불 임금을 먼저 지급한 뒤, 이를 사업주에게 청구하는 제도다. 노동자 보호를 위한 안전망이지만, 이번 조사로 이 제도를 악용한 조직적인 부정수급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노동부는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대지급금이 지급된 사업장 중 104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기획조사를 진행했다. 대지급금 수급빈도와 신청액 규모, 변제금 회수현황 등 지급 자료를 다각도로 분석해 부정수급 소지가 높은 사업장을 선별하는 방식이다. 이런 정밀한 조사 끝에 드러난 부정수급 수법은 단순한 허위 신고를 넘어 치밀하게 짜인 공모 구조를 띠고 있었다.

 

가장 규모가 큰 사례는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원도급업체인 A업체 대표와 하도급업체 대표들이 공모해, 실제로는 하도급업체가 고용한 노동자들을 A업체 소속인 것처럼 위장해 체불 진정을 제기하게 했다.

 

이런 방식으로 23명이 1억 2,200만 원의 대지급금을 부정하게 지급받았는데, 이 돈은 결국 미지급된 하도급 용역대금을 해결하거나 노동자로부터 다시 돌려받아 편취하는 데 쓰였다.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원·하도급업체 간 채무 정산 수단으로 둔갑한 셈이다.

 

제조업체인 B업체에서는 더 노골적인 허위 신고가 이뤄졌다. 대표 ㄱ씨는 소속 노동자들과 공모해, 실제로는 체불임금이 전혀 없고 위장폐업으로 인해 퇴직금조차 발생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임금·퇴직금이 체불된 것처럼 허위 진정을 제기하도록 했다.

 

건설현장 청소업체인 C업체에서는 한층 정교한 수법이 동원됐다. 대표 ㄴ씨는 공동대표 ㄷ씨와 공모해 본인이 노동자가 아님에도 체불 노동자인 것처럼 허위 진정을 제기한 뒤, 거짓 근로계약서와 급여명세서까지 제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C업체에서 근로를 제공한 적 없는 사람들을 동원해 체불 진정을 제기하게 하거나, 소속 노동자들의 실제 체불임금을 부풀려 신고하게 하는 방식으로 부정수급을 시도하기도 했다.

 

노동부는 실제 임금 체불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에게는 신속히 대지급금을 지급해 생활안정을 지원하되, 부정수급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기획조사를 이어가고, 적발 시 형사처벌은 물론 지급된 대지급금의 환수와 최대 5배 금액의 추가 징수까지 엄중히 조치할 방침이다.

 

제도적 보완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10인 이상 다수의 임금체불 신고사건을 조사할 때 대지급금 신청이 예상되는 경우, 사업주로부터 재산목록을 제출받도록 했다.

 

재산이 있거나 정상 가동 중인데도 대지급금 변제금을 미납한 사업장에는 집중적인 회수 절차를 추진하고, 고액·장기 변제금 미납 사업주에게는 신용제재도 실시한다.

 

특히 지난달 12일부터 개정 임금채권보장법이 시행되면서 변제금 회수절차에 국세체납절차가 도입됐고, 체불에 귀책사유가 있는 직상수급인 및 그 상위수급인에게 변제금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제도도 함께 시행돼 사업주의 책임이 한층 무거워졌다.

 


[기자 코멘트]
이번에 적발된 부정수급 사례의 상당수가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충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충남은 모종샛들지구 도시개발, 논산 방산혁신클러스터, 당진항 송산지구 부두 개발 등 대형 건설공사가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지역이다.

 

공사 규모가 클수록 원도급-하도급-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가 복잡해지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소속이 불분명해질 여지도 함께 커진다.

 

이번 A업체 사례처럼 하도급 노동자를 원도급업체 소속으로 위장해 대지급금을 가로채는 수법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일상화된 대형 공사 현장이라면 어디서든 재현될 수 있는 위험이다.

 

충남고용노동지청은 이런 위험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도내 대형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한 표적 점검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10인 이상 임금체불 신고사건에 사업주 재산목록 제출이 의무화된 만큼, 이를 충남 지역 대형 건설사업장에 우선 적용해 부정수급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직상수급인과 상위수급인에 대한 연대책임 제도가 새로 시행된 만큼, 충남도가 발주하는 공공공사에서는 원도급업체에게 하도급업체의 임금 지급 현황을 정기적으로 보고받는 자체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 노동자 보호와 부정수급 방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노동자가 이번 단속 강화로 인해 오히려 대지급금 신청 과정에서 불필요한 의심과 절차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부정수급 차단과 정당한 피해 노동자 보호 사이의 균형을 지키려면, 충남 지역 노동상담센터와 고용노동지청이 합동으로 노동자 대상 대지급금 제도 안내와 신청 절차 지원을 강화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미디어코리아 박상찬 기자 mknews114@gmail.com